둘레가 한 40km, 걸어서는 조금 무리지만 자전거라면 충분히 돌 수 있는 거리의 환형 도로에 둘러쌓여 있는 파리라는 도시에는 어떤 지박령이 깃들어 있길래 2천여년의 세월 속에 사라지지 않고 길다란 과거의 끈들을 곳곳에 걸쳐놓고 아직도 살아있을까?란 생각을 비행기에서 이굴리고 저리 굴려 대었다.
내가 어번에 파리 여행에 타고가는 비행기는 아이슬란드란 나라의 저가 항공인 WOW 항공이다. 개인 스크린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형태의 앤터테인먼트도 없다. 기내식도 없고, 물 마저도 사먹어야 한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좁은 자리에 갇혀서 멍하니 이런 공상 저런 공상을 하거나, 조야하게 편집된 항공사 잡지를 읽는 것 뿐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를 성수기에 1000불 안쪽의 비용으로 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1년에 한번 탈까말까하는 장거리 비행인데, 마치 습관처럼 저가 항공요금에 집요한 집착을 한다. 이 궁상스런 습관은 아마도 처음 비행기라는 것을 탔을때 받았던 요금에 대한 충격의 수십년 지속되는 트라우마의 흔적이리라.
그래도, 아이슬란드라는 미지의 땅을 잠깐이라도 흘깃거릴 수 있다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레이캬비크란 도시를 경유한다.
와이프랑 연애할 때, 와이프가 어떤 지리 과목 프로젝트 일환으로 아이슬란드 대사관을 방문하여 팜플렛 얻으러 가는 길을 동행했었다. 그때 인구가 수십만 밖에 안되는 정말 조그만 나라,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인 경도상으로나 지구 정반대편에 떨어진 멀고도 먼 나라, 그래서 해외라고는 제주도의 경험 밖에 없었던 그때는 아마 생전에 가게될 날은 없을 거라고 짐작케 했던 나라였다. 20여년이 흘러 비록 경유이지만 방문을 하기는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이슬란드 땅은 무척이나 척박했다. 머나먼 나라란 이미지 대신 어떤 비극의 느낌이 아이슬란드란 나라 이름에 결부되기 시작한 건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collapse)'란 책의 아이슬란드에 대한 설명 때문이다.
노르웨이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떠나기 시작한 바이킹들의 숱한 죽음과 약탈의 항해 끝에 서기 800여년경 도달한 무인도였던 이 땅은 처음에는 숲도 있었고, 무척 비옥했으며, 목축에 적합한 풀밭들이 풍부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기후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고 한다. 초기 정착민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축복받은 땅이었으리라.
하지만 이 비옥했던 토양은 오랜 빙하기간과 화산재를 통해 축적되어온 귀중한 광물인 셈이었고, 불과 몇십년의 짧은 기간 동안 신기루 처럼 사라지고 만다. 숲도, 목축지도, 농경지도.
20세기에 이르러 자체적인 철제어선을 통한 대량 어업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 지난하고도 가혹한 멜서스 트랩과의 싸움을 수백년동안 겪어왔어야 했다. 화산재가 목축지를 덮쳤던 1700년대의 어떤 해에는 인구의 5분의1이 아사하였다. 그래서, 아이슬랜드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인간에의한 환경파괴에 기인한 황량한 황무지 땅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아주 조심스럽게 토양을 되찾고, 숲을 다시 만들고자하는 노력들을 장기적인 계획하에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는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으로 WOW 로고와 여름인데도 푸른빛도는 풀한포기 없는 황무지, 그리고 저 멀리 수도 레이캬비크를 같이 담았다.
그래 공항에 내리면 맛있는 커피가 있을꺼다. 환승을 기다리며 제대로된 커피를 즐기고 말테다. 레이캬비크 공항에 착륙하니 바로 여기서 EU 진입 수속을 해야 한다. 아담한 공항에 입국 심사 줄은 짧고 심사원은 친절했다. 환승 탑승구 를 확인하자 말자, 바로 커피 사먹으러 직행했는데. 한잔에 5유로를 지불하니까, 빈 종이컵을 하나 주더니, 저기 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알아서 뽑아 먹으란다. 본전 뽑아야지 하는 생각에 뒤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무시하며, 뜨거운 물 뽑고, 에스프레소 두번 쭉쭉 뽑아 머금어보니, 비행기 안에서 먹었던 봉지커피보다는 낫다만, 가성비가 역시 용납이 안된다.
그래도 커피 마시고 정신 차려, 소위 '면세' 편의점을 둘러보니, 맥주 한캔에 10불, 빵과 얇은 치즈와 얇은 햄으로 구성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샌드위치의 면세 가격이 8불, 뭔가 내용물을 조금이라도 갖췄다 싶으면 바로 10불이 훌쩍 넘어간다. 아이슬란드의 악명 높은 물가를 목격하고 말았다.
5유로짜리 자판기 커피를 즐기고 있음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제 어떤 기괴한 지박령이 촉수를 날름거릴지 모르는 오래되고도 오래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도시, The city of light, 파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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