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테랑 대통령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국립도서관을 방문한다.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멋 옛날이지만, 한국의 언론들이 마치 프랑스가 공산화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것을 기억한다. 모든 기업들이 국유화될 것이고, 프랑스가 이제부터는 소련 편을 들 것처럼 설레발들을 쳐대었었다. 그래서 나의 기억 속에서한동안 미테랑은 프랑스 공산당 출신이 있었다. 누가 사회당 출신이라고하면, 공산당이라고 우기기까지 했었으니. 미테랑은 그렇게 나의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군대가서 취직할때까지 계속 프랑스의 대통령이있다. 그러고보니 나의 청년시절을 함께한 지도자들 중 가장 장기집권한 사람이다.
전쟁을 통과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파란만장한 편이다. 1940년 나찌 침략시에는 군인이었다가 생포되어 전쟁 포로가 되었는데, 여러차례의 탈출 기도 끝에 성공한다. 포로수용소에 있으면서 좌경화되었다고 한다. 탈출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비시정권의 공무원으로 채용이 되어 보훈장관이 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레지스탕스에 참여도 하고, 비시정권으로 국가훈장도 받고, 양쪽으로 바쁘게 살았는데, 대통령이 되고나서 이 시기에 대해 양다리 걸친것 아니냐는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1943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전개했었고, 전쟁이후에는 공산당, 노조, 사회당 등 각종 왼쪽 집단들의 연대세력 쪽 후보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각에 참여하다가, 드골과 격돌하게 되고, 항상 드골 반대 연합전선 쪽에서 드골과 맞서서 싸운다.
1968년의 학생혁명으로 드골이 의회해산이란 승부수를 띄우는데, 이 선거에서 우익이 압도적인 승리를 한다. 좌파연합은 자중지란에 빠져서 해체되고, 미테랑은 독자화된 사회당을 이끈다. 이후 계속된 계속된 대선 도전 끝에 1981년 프랑스 최초로 국민투표에 의한 좌파 대통령이된다.
소련편을 들기는 커녕 소련은 드골때보다도 더 프랑스와 멀어졌다고 푸념하였다. 그 당시 미디어에 항상 등장했던, 레이건, 대처, 콜 총리, 그리고 미테랑. 그들의 죽은 서로 잘맞았다. 특히 콜 총리와 함께 EU를 크게 진전 시켰다고 평가 받았다. 그 네명은, 내 기억 속에서 둘둘이 또는 넷이 함께 늘 같은 장면으로 등장한다.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의 지도자들이 부러워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들의 강력한 지도력하에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사이에 큰 획을 그었다.
미테랑은 1988년 7월14일 바스티유날, 세상에서 제일 크고 현대적인 도서관을 지을 것임을 천명한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담을 것이고, 모든 현대적인 정보전달 수단을 다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프로젝트는 Dominique Perrault 에게 맡겨졌고, 그의 디자인은 EU 현대건축 상을 수상한다. 책 네권을 서로 마주 펼쳐놓은 것 처럼 건물을 설계하였다. 인근 전철역 이름은 미테랑의 업적을 기념하여 미테랑 도서관(Bibliothèque François Mitterrand)이라 명명하였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지금까지 늘 눈앞에 펼쳐지던 각종 바로크, 고딕, 르네상스 등등의 건물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처음으로 현대적인 건물에 포위당한다. 건물들이 상당히 멋있고 독특하다. 마리퀴리 대학처럼 멋있기만하고 기능적으로는 엉망일지 몰라도.
나무 장작으로 건물을 장식했다. Town Planning Department (Direction de l'Urbanisme)이라고 한다.
도서관 가는 길에 계속 이런 현대식 건축물들이 늘어서있다.
재미있는 디자인의 건축물들에는 늘 관심이 많다. 한때 건축가를 하면 잘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해보았었다.
드디어 도서관이다. 엄청난 높이에 깜짝 놀란다. 책의 신격화다. 하늘을 찌르는 고딕 교회가 신에게 압도되는 외경을 끌어내려는 의도였다면, 이 건물은 바로 책의 고딕 성당이다. 미테랑이 신봉하던 사회주의 이론에는 책을 숭배하라고 적혀있나보다. 이런 건물 네채가 서로 책을 펴쳐보이며 마주하고 있다.
파리와서 처음으로 입밖으로 '대단하다'라는 말을 뱉었다.
여기가 입구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이렇게 큰 건물을 어디로 어떻게 구경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두리번거리니 저쪽에 안내하기 위해 어떤 질문이든 받아주겠다는 자세로 서있는 청년을 찾을 수 있었다. 봉쥬르 봉쥬르 서로 인사를 하고, 도서관 어디 어디를 돌아보면 좋을 지 물어본다. 청년은 들어갈 수 없다고 잘라 얘기한다. 아니, 미테랑이 누구에게든 개방된다고 했는데? Local people 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아니 Local people을 어떻게 증명하냐? 프랑스도 주민등록증있냐? 그럼 장기 체류 외국인도 사용할 수 없다는 거냐? 막 질문이 샘솟았지만, 굳이 우기고 들어가서 뭐 책을 읽을 것도 아니고, 그래 관광객들한테 더렵혀지기 싫다라는 의도로 읽겠다.
그럼 어디어디 돌아다닐 수 있냐니, 여기 복도만 한바퀴 돌 수 있고, 저쪽에 전시실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 복도라도 구석 구석 구경해주마.
복도...
복도에 앉아서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역시 디자인의 프랑스. 미국은 절대 저런 멋스러운 책상배치 안한다.
우리는 들어갈 수 없는 열람실이다.
전시회는 판토마임 연극에 대한 소품, 필름 등을 소규모로 모아놓은 곳이다. 무슨 연극인지 언제 공연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영어는 단 한 단어도 없다.
복도를 좀 더 내려가니 루이14세가 만든 거대한 지구본과 천구본이 있다. Vincenzo Coronelli 라는 이탈리아 장인이 1681년 파리에 가서 2년동안 머물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지름이 3.84미터에 무게가 2톤으로 나무로 제작되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책을 보면 군대와 과학자를 세계 곳곳에 항상 같이 보내었던 연원을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영국제국은 그렇게 확보한 지식체계로 단 수십만명의 군대로 수억의 인도인을 수백년동안 지배할 수 있었다. 저 지구본이 유발하라리의 제국과 세계개척, 과학적 지식의 확보에 대한 필연적인 연결고리들에 대한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듯하다.
지구를 보면 또 우리나라를 찾아봐야지. 만주지역에 무슨 종기가 난 것처럼 표현되어 있네. 반도 끝에 그려놓은 섬은 제주도 인가?
확실히 루이14세는 나르시스트 였다. 굳이 여기 자기 얼굴을 새겨놓고 싶었을까
도서관 건물 전체 모형이 있다. 가운데는 소나무 숲이다. 정원인 듯하여, 아까 그 안내하던 청년한테 어떻게하면 저 숲에 갈 수 있는지 물었더니, 아무도 갈 수 없다고 한다. 금단의 땅이군.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숲을 볼 수는 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인도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유학온 학생들인 듯싶다.
금단의 숲.
점심시간
이곳에 앉아서 커피한잔 하기로 한다. 리움미술관 앞에도 있는 Maman이란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Louise Bourgeois의 작품이다. 제목은 "You and me"라고 적혀있다. 붉은 카펫이 반사되어 조각에 독특한 색깔을 입힌 효과가 난다.
도서관 안의 책방
도서관을 나오니 밥차가 있네. Food Truck 문화는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다.
도서관을 나와서도 계속 주변 건물들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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