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20, 2017

Paris_2017 파리여행기 - 8 - 산업디자인 박물관, 아랍 박물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사피엔스란 종에게 있었던 가장 획기적인 사변은 논란의 여지없이 산업혁명이다. 도시와 문화, 그리고 제국을 탄생시킨 농업혁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언급되었듯이 농업혁명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서로 따져보면 결국 맬더스의 트랩에 여전히 갇혀있을 뿐이다. 가혹한 자연환경과의 싸움을 통해서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데, 그 싸움에 소요되는 에너지가 농경이든 수렵과 채집이든 똑같이 인간과 동물의 근력에 의존할 뿐이라는 것이다.
개인이 생산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파워가 1마력 남짓에서 수백 수천 마력으로 확대된 순간, 비로서 인류는 멜더스트랩에서 탈출하여, 더이상 자연은 사투의 대상이 아니라 개발되거나 즐기거나 보존하여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다. 남조류가 광합성을 시작한 이래 가공한 태양 에너지를 화석의 형태로 10억년 동안 축적한 에너지 저장소를 인류가 캐어내어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구 성장 그래프는 ㄱ 자를 오른쪽으로 돌려놓은 모양이 되었고,  인류와 인류를 먹여살리기 위한 가축들의 지구상에서 차지하는  전체 무게는 야생 포유류에 비해 약 20배 정도에 이르렀다. 산업혁명을 통해 지구를 독차지해버린거다.
오늘 방문하는 산업디자인 박물관 (Musée des Arts et Métiers)은 프랑스의 산업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프랑스도 영국에 이은 산업화된 국가가 되었다. 프랑스의 산업화 과정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구글 지도를 통해 열심히 찾아가니 이런 곳에 당도했다. 하지만 이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대학(Conservatoire national des arts et métiers)이다. 프랑스의 최고 교육기관 에꼴 어쩌구의 하나이며 박물관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멋모르고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하고 박물관 입구를 다시 안내받았다.

건물을 돌아 박물관 입구를 찾아가다가 발견한 재미있는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식 아파트의 장식이다. 저 무거운 돌기둥들을 익살스런 표정으로 지탱하고 있다. 오스만은 나폴레옹 3세 시절의 파리 도시 설계자이다. Blouvard라는 대로 개념을 처음 도입하였고, 가로수를 도입하였으며, 미로와 같은 중세시대의 길들을 방사형 대로로 탈바꿈 시켰으며 대규모 공원과 함께 요소요소 각지에 정원과 소규모 공원을 만들었으며, 상하수도 시스템을 도입하여 청결하고 위생적인 현대 도시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혁명이 지긋지긋했던 사람들에게는 더이상 바리케이트를 설치할 수 없는 대로를 무척이나 반겼을 것이다.  오스만 시대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이런 아파트들이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은 매일 같이 어떻게 파리를 바꿀지 회의를 하고 SimCity를 했다고 한다. 파리의 모든 건물이 아래의 사진과 같은 Cream색으로 통일된 것도 이 시기였으니, 우리가 보고 있는 파리는 이 두사람,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의 합작품을 보고 있는 셈이다.


대학 건물을 빙 돌아,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에 멋진 facade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이 박물관 자체가 박물관이다. 1794년에 위 대학의 부속 기관으로 과학의 발명과 혁신의 산물들을 수집 전시하면서 박물관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박물관에 들어가면 곳곳에 어떻게 전시를하고 교육에 활용했는지 설명해놓았다. 예를 들어 바닥에 레일을 설치해서 전시 물품들을 어떻게 교실까지 이동시켰는지 등등

전시관의 유리들이 요즘의 유리가 아닌 굴곡이 많은 유리들인점으로 보아 옛날 전시 모습 그대로를 오늘날에도 전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유여신상의 최초 모델을 박물관 입구에 떡하니 전시해놓고 있다. 미국 사람들한테 프랑스가 전해준 과학 문명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또는 프랑스의 청소년들에게 한때 프랑스가 미국을 선도했던 것 처럼 다시 세계 첨단의 과학 기술을 선도하자는 자극일 수도 있겠다.

컴퓨터의 역사를 배우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장치, 파스칼의 계산기를 프랑스의 자랑스러운 발명품으로 전시해놓았다. 파스칼이 19살때 세금징수원이었던 아버지를 돕기위해서 만들었다나



시계, 무게, 온도와 부피 같은 도량에 대한 근대 과학 기술자들의 집착을 보면서, 우리가 배웠던 과학 과목의 제일 첫장이 왜 항상 측정(Measurement) 였었는지의 이유와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았다.
  


도량은 르네상스의 산물만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샤를마뉴 시대에 아래 사진과 같은 표준 추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질량보존의 법칙 라브와지에의 실험실이다. 프랑스 혁명 중 길로틴으로 처형 당해야 했던 프랑스가 자랑하는 현대 화학의 아버지.

이제 건축 관련 방으로 옮겼더니 오늘날 파리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들이 어떻게 건축되었는지를 재현해놓았다.







또 자유의 여신상


다음은 미디어 관, 그러고 보니 카메라와 영화 모두 프랑스의 발명품이다.
매우 초기의 카메라와 초기의 휴대가 가능한 여행용 카메라.


하지만, 소리에 대한 발명은 미국에게 선수를 뺏겼네. 에디슨의 축음기




당시의 발달된 광학기술로 뤼미에르는 최초의 영화를 만든 한편, 피조와 푸코는 아래 장치를 이용해서 최초의 현대적인 방법으로 빛의 속도를 측정하였다. 대학 다닐때 깜박이는 플래쉬를 이용해서 이들이 했던 실험을 그대로 따라했던 적이 있다.



커뮤니케이션 관으로 이동하면서 유럽문명과 여타 문명을 구분짓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비결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활자와 대규모 프레스 인쇄기술이다. 아이디어가 활자화되면서 혁신적인 기술, 사상, 프로세스가 대중들 속에 빠르게 확산되어갔다. 아이디어가 아이디어를 낳고, 그 아이디어가 사회 곳곳에 다시 확산되면서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촉발하는 그런 끝없는 양의 되새김 구조가 바로 활자를 통해 촉발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산업혁명으로 치닫게 되는 이성과 과학 기술의 힘을 숭상하는 유럽 문명 발전의 가장 기초적인 동작 원리였었던 거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문으로 에도시대에 축적 발전된 출판기술을 나는 꼽고 싶다. 유키치의 문명론이 당시에 50만부가 팔렸다는 사실 자체에서 이미 조선과 일본의 사회 성숙도 차이에서 게임이 안되었었다고 생각한다.  50만부를 찍어낼 수 있는 출판 기술과 지식을 소비할 수 있는 일정 정도 문화 소양을 갖춘 소비자 집단,  50만부를 유통해낼 수 있는 서적 유통 구조 중 당시 조선이 비슷하게라도 갖춘게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이미 이런 윤전기로 신문을 찍어내고 있었다. 언론이 어떻게 혁명에 영향을 미쳤는지, 글잘쓰는 선동가 마라가 어떻게 추앙을 받게 되었고, 또 암살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의 감이 잡힌다. 이미 이 시대에 수십만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던 매스미디어가 존재해 있었으며 인기 집필진은 명성을 얻고 있었다.

제법 근사한 위용과는 달리 실패한 증기기관 비행기 Avion III, 프랑스 군대의 지원을 받아 1897년에 만들긴 했는데, 시험 운행에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작자 Ader 본인은 100미터 날았다고 극구 주장했다고.



그리고 지구의 자전을 보여주는 푸코의 추 원본이다.


그외 교통관에 가면 최초의 증기 엔진을 이용한 궤도용 수레, 다양한 디자인의 자전거, 자동차 등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의 규모나 세련됨의 수준이 확실히 스미소니언에 비해서 많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에는 아마도 최고의 과학 박물관이었겠지만, 이제는 어쩌면 프랑스가 가장 잘 나갔었던 19세기라는 과거에 발목에 잡혀있음을 보여주는 무덤 같은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박물관이 박물관이 되어버린 산업디자인 박물관을 나온다.

다음 목적지는 아랍 박물관인데, 여기서는 Arab World Institute (Institut du Monde Arabe)라고 한다. 이 곳은 프랑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 장누벨의 독특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장누벨의 1981년 디자인이고, 1987년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장누벨은 또 삼성의 리움미술관을 설계 디자인한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이 건물디자인으로 아가칸 건축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멋진 건물을 파리에 들어서게한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은 바로 미테랑이다. 마치 나폴레옹 3세처럼, 미테랑도 SimCity에 관심이 많았다. 파리의 현대화를 위한 대규모의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루브르의 피라미드, 국립도서관, 라데팡스의 신개선문,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그리고 이곳 등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전철역(Jussieu)에 도착해서 나오니 매우 웅장한 현대 건축물이 반긴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건물인가 구글지도를 보니 마리퀴리 대학(niversité Pierre-et-Marie-Curie)이다. 과학 의학 분야로서는 프랑스에서 제일 큰 대학이며, 프랑스 대학 랭킹 1위의 명문 대학이다.
멋진 건물 외관과는 다르게 건축물로서는 완전 실패작이라고 한다. 건물 통풍 구조가 바람을 한곳으로 모아 증폭시켜서 쏟아낸다든지, 미로와 같은 설계로 교실에서 교실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방음이 안되어서 누가 화장실 물을 내리면 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단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석면이 방화제로 과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석면에의한 건강 우려가상당히 심각해져 1990년말경 맹렬한 시위 끝에, 건물 벽을 모두 뜯어내고 다시 설치하는 공사를 거쳤다고 한다.

대학이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이런 길을 한참을 걸어야 아랍 박물관에 다다를 수가 있다. 젊은이들이 이 넓은 보도에서 스테이트 보드를 즐기고 있다.


드디어 도착했다. 저 창문의 아라베스크 같은 문양은 장식이 아니라 햇빛의 통과량을 조절하는 조리개 역할을 하는 채광 통로이다. 햇볕양에 따라서 자동으로 조리개가 조여졌다가 늘어났다가 해야 하는데, 상당 부분이 고장이 났다고 한다.

건물 중앙으로는 유리로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고

뮤지엄에 들어서면 이런 느낌이다. 방금전에 다녀왔던 밝고 고풍스러웠던 산업디자인 박물관과는 완전히 다른 어둡지만 거울 유리등을 활용하여 현대적인 느낌이다.

전시물 역시 현대적으로 세련된 진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옛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명 태동기의 유물들인 듯 싶다.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못하는 것은 전시물의 대부분이 프랑스어로만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 전시실 마다 계략적인 전체 설명은 영어가 있지만, 개별 전시의 구체적인 설명을 영어로 듣고 싶다면 오디오 가이드를 들어야 한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 좋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또 있다. 그나저나 이렇게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데 별로 있지도 않은 일본관광객을 위한 일어 오디오 가이드는 있으면서 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가뭄에 콩나듯 있는지.

인류 문명을 역사가 있는 문명이게 한 최초의 쐐기모양 문자. 폰트가 상당히 유려하다.

유대교 역시 아랍의 한 축이다. 유럽으로 건너와 유럽인들이 되었지만 뿌리는 아랍인 셈이다. 경전 토라를 전시해놓았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과 여타의 아랍 국가들을 같은 문화권으로 묶는 건 무리다.

코란인듯.

신과 마호멧을 형상화하는 것이 금지된 종교이다보니 모든 장식미가 도형과 글자에 집중되어 멋들어진 서예체가 상당히 발달해있다.


아랍의 서예체를 현대미술로 표현한 작품

아랍의 악기들을 소개하는 동영상들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조리개 안쪽으로 이렇게 채광 커튼을 덧대었다. 아마도 고장나서 그런게 아닐까.

이 건물은 바로 세느강 옆에 붙어있어서 옥상에 오르면 세느강을 중심으로한 파리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데 아뿔사 우리가 너무 늦게 올라가서 그냥 레스토랑만 찍고서 내려왔다.

햇빛이 조리개를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조리개 창 하나를 근접해서 담아보았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외벽을 가까이 그리고 멀리 찍어 보았다. 하늘과 구름이 외벽에서 거울처럼 반사되는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잘 된것 같지가 않다.



오늘 저녁은 직장의 파리 출신 프랑스 동료가 알려준 맛집들 중에서 하나를 찾아가기로 한다.
L'Auberge Aveyronnaise
Michellin Recommended 평가를 받은, 상당히 평점이 좋은 pub식 레스토랑이다. 상당히 트렌디하고 현대적인 베르시(Bercy)란 동네에 있다. 웬지 엄청 부촌인 듯하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우리가 도착할 즈음의 오후 8시부터 저녁 영업시작이다. 구글 지도의 도움으로 고픈 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도착했더니, 문이 굳게 닫혀있다. 가게 입구에 이런 저런 불어로된 안내들이 있는데 우리가 읽을 수가 없다. 우리 와이프 또 용감하게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붙들어 세우고 왜 이 식당이 닫혀있는지 여기 안내에 적혀있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친절하신 아주머니 열심히 이것 저것 읽더니 가게문은 닫혀있는게 확실한데 왜 닫혀있는지는 안내에 전혀 적혀있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별 안내없이 휴가를 훌쩍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8월초는 프랑스인들에게는 휴가 피크 기간이라고.
와이프, 이에 굴하지 않고, 그럼 우리 정말 배고프니 맛있는 식당 하나 추천해달라 그런다. 이거 프랑스 사람들 친절하다고 너무 몰아세우는 것이 아닐까란 걱정이 살짝 든다.
그랬더니, 여기서 조금만 가면 Bercy Village란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 아주 많은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있다고,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라고 한다.
여기가 Bercy Village. 반갑게도 우리 동네 특산물 Five guys 햄버거 가게가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줄서서 먹고 있다. 갑자기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미식의 천국으로서 프랑스는 전 세계의 미식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정작 프랑스 인들에게는 미국인들이 평소에 그저 그렇게 취급하는 싸구려 버거가 트렌디한 동네의 인기 음식이라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여기 있는 가게들이 다 평점이 그렇고 그렇다. 그 중에서 그나마 평점이 괜찮은 가게 들어가서, 와인을 시키고



와이프는 비프 타르타르를 나는 샤르퀴트리를 주문해서 먹는다. 이집 타르타르는 약간 매운맛 소스를 써서 전날 먹었던 집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아마존 영화들 중에서 어제 갔던 몽마르뜨가 배경인 영화 하나를 골라서 와인을 홀짝 거리며 보기로 한다. 2차 세계 대전 나찌 점령기 중 파리에서 유태인들을 검거하여 죽음의 수용소로 강제 이송하는 과정들을 다룬 영화를 골랐다. 레옹의 장르노가 나오는 2010년 영화 The Round up (La Rafle)이다. 아이들이 주인공이라 보는 내도록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려야했다. 파리 전역에서 약 17,000의 유태인이 강제 소집되어 희생되었고, 정말 극히 일부인 몇십명 정도만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새벽 4시에 기습으로 이루어진 검거 와중에 파리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고, 개입하여 목표했던 25,000명을 채우지는 못했다고 한다.
나찌의 유태인 학살이란 엄청난 범죄행위와는 별개로 프랑스와 2차세계대전은 유심히 볼만한 흥미있는 주제이다. 프랑스에서의 반유대 정서가 얼마나 컸었는지, 독일의 점령을 받아들이는 결정에 대한 정치적 판단의 죄악성, 또는 불가피성. 드골의 자유 프랑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참여와 지지 정도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에 대한 의심들. 그리고, 파리 해방 직후, 너무나 가혹했던, 어찌보면 지나치게 잔인했던 부역자 처단 과정 등등. 프랑스가 선전하고 있는 내용들의 이면에 있는 사실들은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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