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의 파리가 배경인 오페라 라보엠을 보면 가난한 예술가들인 보헤미안들이 그 중 한명이 벌어온 돈으로 밀린 집세는 내지않고 술마시러 놀러 내려가는데, 그 목적지가 라틴지구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어디 놀러가는 장소는 역시 대학가로 서울의 신촌,홍대 일대가 될 듯싶다. 지금도 라보엠의 보헤미안들이 술마시고 놀았던 선술집들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대학생들보단 관광객들이 훨씬 더 많을 듯하다.
라틴지구 탐방의 출발점은 생 미셀 분수다. 역시 나폴레옹3세와 오스만의 SimCity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 오스만의 자랑거리인 Blouvard의 끝부분을 장식할 기념물로 지어졌다. 처음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여신상을 중심에 배치하는 것으로 했었다가, 보나파르뜨 나폴레옹으로 바뀌었었는데 나폴레옹 3세의 반대자들에 의해 엄청난 비난에 부딪혀, 결국 대천사 미카엘이 용이랑 싸우고 있는 모습으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한다.
파리꼬뮨 때에는 나폴레옹3세를 떠올리는 기념물이라고 하여 군중들에 의해 훼손되었었다가 다시 원설계자(Gabriel Davioud)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
오스만이 이런 골목 골목까지 다 없애지는 못했네. Rue du Chat-qui-Pêche 라고 파리에서 가장 좁은 골목이다.
이 아파트 역시 오스만이 원했던 그런 아파트는 아닐 것이다. 건물과 건물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아파트 건물
오스만 아파트는 역시 크림색으로 장식적이며 장중한 느낌이 나야한다. 어제의 유머스런 장식과 대조적인 매우 심각한 고뇌에 몰두하고 있는 근육질 아저씨들
라틴지구의 중세성당 성 세버린 성당(Paroisse de Saint-Séverin) 정면에 있는 장미창문이 마치 불길에 이글거리는 것 같다.
성당의 첨탑. 1412년에 주조된 종은 파리에 남아있는 종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 교회가 또 있는데 로만 카톨릭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 정교 교회라고. Église Saint-Julien-le-Pauvre (가난한 성 쥴리앙 성당).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부숴진 채 그대로 있거나 부서진 잔해가 드러나게 그위에 그대로 벽을 세웠거나 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역시 부숴진 부분들은 혁명 때문이었다. 아래 포스터들을 보니 여기서 음악 공연을 자주 하는 듯 하다.
이 교회는 공원(Square René-Viviani)을 끼고 있는데, 공원에 옛 교회 건물의 일부로 여겨지는 잔해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이 공원에 있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1601년생의 아카시아 나무. 나무를 감상하고 있는데 어떤 청각장애인이 기부를 강요한다. 거절했더니 아주 성난 소리를 지르며 2~3명이 둘러싸고 내 뒷 주머니의 지갑을 건드린다. 더 이상의 사태로 진전은 되지 않았지만 놀랍고 당황스럽고 불쾌한 경험이다.
라틴지구의 거리 모습인데, 대학가의 느낌이 나는지 모르겠다.
공원을 돌아나오니 Shakespeare and Company 책방이 있다. Before Sunset이란 영화때문에 알게된 책방인데 영어책만 취급한다. 사실은 역사가 깊다. 20년대에 Sylvia Beach 란 사람이 영어책 전용 책방을 개점했었는데, 이 서점에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같은 거장들이 모여서 책읽고 노닥거리면서 명성을 얻게 되지만, 나찌의 파리 점령으로 문을 닫는다. 10년이 흐른 후 George Whitman 이란 2차대전 참전 군인이 파리에 와서는 다른 퇴역군인들의 책을 자신의 군봉급으로 천여권 모으게된다. 그 책들을 가지고 라틴 지구, 이 자리에 책방을 여는데 Sylvia Beach의 Shakespeare and Company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게 명칭은 그 이름을 쓸 수가 없었으나, 훗날 Sylvia Beach가 이 책방을 방문하여 "정신적 계승자"라며 명칭 사용을 허락하게되고, 세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인 1964년 드디어 가게 이름을 Shakespeare and Company로 바꾸게 된다.
"책방으로 가장한 사회주의자들의 유토피아"라고 자신의 책방을 지칭했던 휘트먼은 공짜로 이런 저런 사람들을 책방에서 묵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단 하루에 한권의 책을 읽고, 약간의 책방일을 도와주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휘트먼은 직접 이들을 위해 팬케잌을 아침으로 구워줬는데, 통산 30,000 명 정도가 책방 신세를 졌다고 한다.
2011년 98세로 돌아가시고 딸 되시는 분이 현재 운영을 하고 있다고...
지금은 재워주는지 모르겠는데, 미로같은 책방안은 관광객들로 꽉 차있다. 실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책방 앞 벤치
파리의 로마시대 유적인 3세기경의 로마목욕탕이다. 공중 목욕탕이었는데 놀랍게도 공짜였다한다. 골족을 로마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씻겨야 했었나보다.
공교롭게도 공사가 한창이다.
목욕탕과 맞붙어 있는 건물이 중세 박물관(Musée de Cluny)이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중세 시가 건물 중의 하나인 Hotel de Cluny를 1843년부터 중세 박물관으로 활용해오고 있다. 클뤼니 수도원의 파리 별장 숙소였던 이곳은 1334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나는 중세에 관심이 좀 있다.
중세라면 역시 종교적 광기인데, 광기에 휩싸여 있을때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잔혹한 상상력에 대한 관음증 비슷한거다. 그런걸 제대로 볼려면 중세의 고문 박물관을 가야할 것 같지만, 중세의 일상적인 성스러운 기념물들 속에서 그런 광기의 징후들을 보고 싶은거다. 폭력의 광기는 어떤 특별한 곳에 있는 뿔달린 악마 같은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살았던 누군가에게는 그냥 일상이었을 뿐이라는 나의 평소의 지론 때문이다. 현대의 이성과 합리가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자리하기 까지의 긴 여정 상에 거쳐왔던 그 시대의 심각한 집단 망상 속의 일상들 말이다.
중세의 폭력에 대해서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에서 스티븐 핑커가 정말 적나라하게 잘 묘사해놓았다. 그 책을 읽고나서 나는 중세 사람들을 그려놓은 인물화의 눈빛에서 광기를 보기 시작한거다.
정문인 듯한데 출입을 막아놓았다.
중세의 우물물. "savage man" 가고일이라고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드니는 목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수태고지. "임신 하셨습니다." 사악~ 고개를 돌리면서 "아... 그래요?" 하는, 어떻게 보면 약간 코믹한 장면인데, 저 고개의 각도와 오른손을 뻗은 모양이 다 종교적인 감정들의 표현이라고 한다.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아랍의 문물이 한때 유행했었다고 한다.
4명의 사도 (John, James, Paul, Peter) 1270년의 스테인드글라스
데릴라의 유혹에 못이겨 계율을 어긴 결과로 눈이 멀게된 삼손을 그린, 생샤펠에서 가져온 스테인드글라스. 구약 만큼 엽기와 잔인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을 본적이 없다.
혁명으로 목이 달아난 왕과 성인들의 석상들.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이런 문화재 파괴가 극심했다. 무지몽매함이 현대의 ISIS급이다. 아니, ISIS가 18세기식의 시대착오적 광기에 있다고 해야 하는 게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가졌던 혁명세력들에 대한 예의인가.
스페인 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도 카톨릭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서의 문화를 형성해왔다. 후일 위그노와의 종교 전쟁을 치뤘지만, 아직도 카톨릭이 80%라고 하니 카톨릭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혁명 세력들은 카톨릭에 대해서 이렇게 극심한 적대감을 폭력적으로 표출했었다. 카톨릭에 대한 신심이 높았던 방데(Vendee) 지방에서 징집에 반대하는 '카톨릭과 왕의 군대'라는 민병 반란이 발발하자, 혁명 세력은 거의 30만명에 이르는 이 지역 주민들을 매우 잔인하게 학살한다.
7월14일 바스티유 데이를 통해 프랑스 전체가 혁명을 찬양하지만, 프랑스 혁명만큼 폭력적이고 잔혹함으로 점철된 근대의 사변도 별로 없다.
왕들의 목만 자른 것이 아니라 얼굴까지 갈아버렸다. 성서에 등장하는 유대의 왕들도 프랑스 왕으로 착각하고 목을 잘라 버린거다.
테피스트리들로 성 스테판의 일대기를 그려낸 방이 있다. 이 장면은 스테판의 시신이 들짐승들에게 노출되어있는 상황이다. 유니콘은 수심이 가득한데 원숭이는 즐거운 듯하다. 1500년 벨기에 작품.
Hotel de Cluny의 Chapel에 남아 있는 15세기의 천장
Jean Juvénal des Ursins 란 사람의 가족 그림, 15세기
순례자의 가리비.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야고보를 상징하는 가리비를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더 볼것이 남았는데도 우리 딸의 전화를 받고 루브르로 서둘러 이동해야 한다. 어제 우리 딸이랑 장식미술박물관 (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열리는 Dior 전시회를 보기로 약속했었는데 시간이 다되었다. 로마 목욕탕 내부도 봐야했는데, 공사해서 볼수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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