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다. 어제까지 흥청망청 놀던 파리 사람들은 이제부터는 열심히 일하러가야 할것이고, 우리는 자유로이 놀러 돌아다니는 거다. 오늘 여행에 나서기 전에 두 가지 숙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뮤지엄 패스 6일권을 사야하고, 1주일동안 자유롭게 지하철을 탈 수 있는 Navigo 카드를 사야한다.
일단은 뮤지엄 패스를 어디서 파는지 모르니까, 구글맵에다 대고 museum pass라고 검색어를 넣어본다. 즉시, 뮤지엄패스 로고와 함께 Inter Musées 라는 빨간 점이 지도에 또렷이 표시되며, 숙소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아무런 의심없이 인터뮤제라고 발음되리라 생각되는 곳을 향해 구글맵을 이용하여 경로를 좇아간다. 퐁피두 센터 뒷편 어느 상가 건물이다. 구글이 가라는 곳에 잘 도착했는데, 도저히 '인터뮤제'스러운 가게, 상점, 간판 어떤 것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구글이 잘못된 정보를 줬나, 이제 어떻게 하지라고 낯가림이 심한 나는 주변에 도움 청할 엄두를 못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낯가림에 있어서는 나와는 정반대 성격의 와이프가 아무 가게나 불쑥 들어가서 물어본다. 영어가 서툰 친절한 아저씨가 저쪽 계단을 올라가서 2층이라고 알려준다. 오 2층에 뮤지엄패스 로고가 있다. 메르시를 연발하고나서,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발걸음하는데, 계단 입구가 철문으로 막혀있다. 철문은 굳게 잠겨있다.
이거 뭔가 많이 이상하다. 철문 옆에 보니 인터폰이 있다. 여기다가 용건을 얘기하면 철문이 열리나보다. 그래서 호출버튼을 누르니, 프랑스어로 뭔가 응답이 있다. 뮤지엄 패스를 사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영어로 "what?" 이라고 되묻는데,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이 어투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음, 내 영어 발음이 안좋아서 못알아듣나보다. 그럼 볼륨을 높여서 또박 또박 다시 한번 물어본다. 다시 "what?"이란 답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이런 미친놈을 봤나?'라는 음색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외치듯 묻는 질문을 들은, 주변을 지나던 어떤 말쑥한 중년의 신사가 안스럽다는 듯의 표정으로 거든다. "(바보야 - 분명히 생략되었지만, 들을 수 있었다 -) 여기서는 뮤지엄 패스를 팔지 않으니 요앞에퐁피두 센터 안에 가서 사라"라고 안내를 해준다. 아! 여기는 뮤지엄패스를 관장하는 회사의 본사구나. 삼성전자 본사에 가서 갤럭시 사러왔다고 소리친 격이었구나.
퐁피두 센터를 가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았는데, 퐁피두 센터 앞 광장에는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길다란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낭패다. 뮤지엄패스를 파는 곳은 따로 입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센터 건물을 돌아보아도 오로지 확인 가능한 입구는 기나긴 줄의 앞에만 있을 뿐이다. 할 수 있나 줄을 서야지. 멍하니 줄을 서는데, 와이프가 퐁피두 센터를 볼 것도 아닌데, 이건 아니라며 흥분하더니 뮤지엄 패스를 파는 다른 박물관을 가서 거기서 사야한다고 주장한다.
와이프의 흥분된 결정은 감정에 휩싸인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꼭 고속도로 막히는 것에 화나서 우회도로로 나섰다가 오히려 훨씬 오래 걸려서 도착했던 그런 나쁜 경험과 연결되는 느낌이다. 구글에 그냥 'museum pass'라고 달랑 검색하는 것이 아닌 좀 성의있게 'how to buy paris museum pass?'라고 정중하게 물어왔다. 여러 답변들 중에서 tripadvisor.com의 글을 골라서 읽어보니 "뮤지엄 패스는 뮤지엄 패스로 연결된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판매한다. 인기있는 박물관에서 길게 줄서서 사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덜 선호하는 박물관에서 먼저 뮤지엄 패스를 구매하고, 뮤지엄패스의 fast track기능을 활용하여 인기있는 박물관을 가라"라고 마치 우리 현재 상황을 알고나 있다는 듯이 적혀있다.
와이프의 흥분된 결정이 여행 선배들의 조언과 일치하는 순간이다. 원래 목적지인 군사박물관으로 가기로 한다. 군사박물관은 그렇게 선호도가 높지 않으니 줄을 서지 않고 뮤지엄패스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구글 때문에 집떠나 고생하는 여행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지만, 우리가 겪었던 이런 바보같은 에피소드 역시 역설적으로 구글 때문에 초래된 결과다. 자꾸 자꾸 구글에 대한 정보 의존도가 커지면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노력들은, 이전에는 복잡한 질문 절차였었던 것이 점차 하나의 문장에서 또 하나의 단어가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뒤 문맥이 생략된 채로도 신기하게 동작하던 단일 단어 검색이 어떤 상황에서는 전혀 엉뚱한 함정으로 우리를 꾀어낼 수도 있었던 거다.
퐁피두 센터까지 왔는데 사진을 한장 찍고 가야지하고, 건물 사면을 찍는데, 이 커플이 절묘하게 등장했다. 나는 전혀 이 순간을 노리고 셔터를 누른 것이 아님을 맹세한다.
첫번째 숙제는 미완이지만 해결책을 찾았으니 두번째 숙제인 Navigo카드를 사야 한다. 전철역(Rambuteau)에 들어가니 티켓 자판기가 있다. 흠, 역시 영어 메뉴를 선택할 수 있고, 메뉴를 뒤적거리니 Navigo 관련 항목이 있는데, 이 메뉴 항목만 불어인데 coupon이라고 써있는 것 같다. 어쨋든 선택을 하고 매수 2목을 선택하니 하나에 5유로씩 10유로를 내란다. 1주일에 5유로 내고 전철을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다니 뭔가 많이 이상하다. 금액을 지불하니 마그네틱 전철표 2개를 뱉어낸다. 와이프랑 하나씩 들고 전철 개찰구 마그네틱 표 투입구에 집어넣으니, 역시 의심했던대로 차단봉은 꼼짝을 안한다. 두번째 숙제도 만만치 않다.
마침 창구에 직원이 근무중이다. 우리가 Navigo라고 믿고 있던 표를 들고 창구에 섰더니 직원이 마치 혼을 내듯 우리보고 프랑스어를 외쳐댄다. 못알아듣지만 끝말은 파리쉐하고 끝난다. 내가 전혀 못알아 들으니까, 푸하고 짧은 한숨을 쉬더니 창구창문을 휙 닫아버린다. 그 끝말 파리쉐가 의미하는 바는 직감적으로 파리 사람들이다. 즉 Navigo카드는 파리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 너는 살 수 없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 그럼 10유로 어떻게 환불 받을 수 없나를 알아보려고 애처러운 표정으로 창구직원을 보고 있는데, 눈길조차 건네지 않는다.
역시 와이프. 지나가는 어떤 흑인 아가씨를 바로 붙잡는다. 와이프가 Navigo카드를 사고 싶다라고 얘기했더니, 이 친절한 아가씨가 자판기로 우리를 데려가더니 우리가 했던 절차를 그대로 반복한다. 출근길에 바쁜 아가씨 시간낭비 시키고 있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우리보고 10유로 투입하란다. 와이프가 10유로 이미 냈고 요런 것을 받았다고 마그네틱 표를 보여준다. 흑인 아가씨 바로 상황 파악하고, 우리한테서 표 2개를 바로 뺏아들더니 창구로 직행한다. 그 표 2개는 coupon이란 단어에서 짐작했듯 Navigo카드 교환권이었다. 그 아가씨는 엄연한 파리 시민이니 창구 직원은 두말하지 않고 Navigo카드 2개를 건네준다. 순간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시 갈길을 가는 아가씨를 쫓아가서까지 고맙다고 고맙다고 얘기한다.
충전을 해야 사용할 수 있다. 일주일 충전 비용은 22.5유로이며 1구간 ~ 5구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정확히 월요일에 시작해서 일요일에 끝난다. 그러니 일요일에 충전하면 엄청난 손해.
의기양양하게 파리지엥처럼 삐릭 tag하고 개찰봉을 통과한다. 이제 군사박물관으로 가자.
계획했던 대로 군사박물관은 줄이 없어서 뮤지엄 패스를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6일권 일인당 74유로이니 6일동안 부지런히 다녀야 본전 뽑을 수 있겠다.
군사박물관 정면이다. 이제 어디 찾아보지 않고, 이 건물 정도면 르네상스 양식이겠다라는 감이 잡힌다. 태양왕 루이14세가 병들고 나이든 군인들을 위한 의료 및 주거 시설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와이프가 군부를 회유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지었다고 했는데 그 속사정은 까먹었다. 군사시설임을 알려주는 가장 뚜렷한 건물의 상징은 중세 갑옷을 입은 병정 모양의 창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정말 많은 전쟁들을 서로 치루었다.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에서는 병자호란을 제외하고는 17,18,19세기 거의 3세기 동안 무력 충돌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유럽 특히 프랑스는 전쟁이 거의 일상과 다름없고, 평화가 오히려 특별한 시기였었던 것같다. 전쟁이 초래하는 그 끔찍한 비극 그 자체로 인해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특히 세계 2차 세계 대전은 이해할 수 없고 가늠하기 힘든 인류의 처참함으로 점철되어 있어 그 현장의 중심에서 전쟁을 기억해보고 싶었다.
이 건물에는 전쟁과 군사에 관한 여러 박물관을 갖추고 있다.
17세기까지의 군사 박물관
루이14세에서 나폴레옹3세까지 군사 전시실
2차례의 세계 대전에 대한 전시실
샤를 드골 기념관
프랑스 해방관: 2차세계대전 중의 자유프랑스, 레지스탕스, 유태인 추방
그리고,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중앙 돔
군사박물관에는 각 전쟁에 대한 군사 배치, 작전, 진행 과정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있다.
나폴레옹의 유명한 바그람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워털루 전투 등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사전 공부도 부족하고, 시간도 넉넉치 않아 그냥 지나쳐버렸다. 하지만, 당시 기병과 포병의 중요성에 대한 짧막한 영어 설명글들은 대약 읽었었다.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허무하게 죽어야 하다니
클래식 음악의 역사 또한 전쟁, 군사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듯 하다. 클라리넷 바순이 이렇게 종류가 많이 개발되었었다니 놀랍다
소프라노, 메조, 알토, 테너, 바리톤 모든 음역의 색소폰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 색소폰의 발명가 벨기에인 Sax 역시 군사음악 용으로 개발하여 프랑스 군대에서 활용도가 높았다고 한다.
19세기의 장총들. 프랑스는 총도 예쁘게 만드는 듯
다비드가 그리다 만 젊은 시절의 나폴레옹
문양을 보니 태양 그림에다가 부르봉왕조 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루이14세 시절의 함포? 당시의 대포는 탄환이 폭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쇳덩이로 타격용이었다고 한다. 사거리와 파괴력이 개선된 투석기인 셈이다.
이 깃발들 전쟁 등에서 전리품으로 챙긴 상대 국가 또는 군대의 깃발들이란다. 이렇게 교회 천정에 전시하는게 프랑스의 전통이라나. 오른쪽 귀퉁이의 '소'자는 중국식 같지는 않고 일본의 깃발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저기 어딘가 병인양요때 뺏은 조선의 깃발이 있지는 않겠지
종군 화가에 의해 묘사된 보불전쟁의 장면들이다. 나폴레옹3세의 프랑스가 비스마르크의 프러시아한테 형편없이 대패한 전쟁으로 양국이 연인원 2백만을 동원한 그야말로 총력전의 전쟁이었다. 프러시아 군대가 훨씬 훈련이 잘되어있었고, 작전 능력과 철도와 같은 현대기술의 활용에 있어 월등함을 보여주어, 프랑스 측은 수십만 명이 죽고 다쳤으나, 프러시아의 사상자 규모는 프랑스의 1/5이 안된다. 이 전쟁으로 나폴레옹3세가 물러나고 3공화정이 선포된다. 파리는 프러시아 군에 포위 점령당했으며, 파리코뮨이 터지고, 프랑스 군인들은 잔인하게 콤뮨을 진압하고, 수만명의 사람들이 처형당한다. 독일은 이 전쟁을 통해 통일을 완성한다. 그 독일이 1차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히틀러란 악마를 소환하여 2차세계대전이란 엄청난 죽음의 지옥으로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끌어들였다.
이어질 비극들의 전조를 저 그림에 내비친 피빛에서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인가
마음이 불편한 그림들을 보고 났더니, 시차적응이 안된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레지스탕스 전시실을 마저 봐야 하는데, 구토기가 느껴지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쑤셔오는 몸살 증상이 더이상의 관람을 포기하게 만든다.
와이프한테 급하게 SOS를 보내고, 천천히 걸어 숙소로 일단 퇴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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