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이곳 저곳에 이런 저런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널려있다. 파리의 그 오랜 과거로의 얽히고 설킨 길들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하는 Museum Pass를 2일권, 4일권, 6일권 단위로 판다.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을 제외하고서 온종일 여행할 수 있는 날이 7일이니, 첫날인 오늘은 Museum Pass없이 다니기로 하고, 역사를 종축으로 돌려 파리를 뜯어보는 건 내일부터 시작해서 떠나기 전날까지 6일간 6일권을 활용하기로 한다. 1주일 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전철 pass 는월요일부터 유효기간이 시작된다. 내일이 월요일이니, 내일 아침 구매하여 신나게 타고 다니기로 하고 일요일인 오늘은 숙소 주변을 걸어 다니기로 한다.
이렇게 까지는 부부가 흔쾌히 박자를 잘 맞췄는데, 아침 먹는 문제로 삐걱거린다. 파리에서의 첫 아침을 맛있는 커피와 함께 프랑스식 브런치로 먹어주는 것으로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내딛는 건데, 공교롭게도 일요일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일요일 아침에 식당 문을 연 곳은 관광지에서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식당들이므로, 적당히 괜찮은 빵집에가서 빵을 사서 길거리 적당한 벤치에서 먹자는 것이 와이프의 판단이자 번복할 수 없는 결정 사항이다.. 적당히 괜찮은 빵집을 yelp를 통해 어떻게든 찾았다. 'Legay Choc' 평점은 상당히 높은데 안타깝게도 커피를 안판다. 와이프의 명령 2호는 Starbucks를 찾으라는 거다. 스타벅스라면 사들고 온 빵들을 눈치안보고 펼쳐놓고 커피랑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말은 된다만, 파리에서의 첫 아침을 스타벅스에서 먹으니 영 여행하는 흥이 안돋는다.
Legay Choc 라는 빵집에서 사서 스타벅스에 펼쳐놓은 닭고기와 돼지고기 Quiche
이제 배를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Hôtel de Ville 이 바야흐로 이번 여행 첫 목적지가 될 것이다. Hôtel이라 써있지만, 호텔이 아니고, 시청사를 의미한다. 파리 곳곳에 오랜 세월의 깊이가 아득하게 파여있듯이, 이 화려하고 웅장한 르네상스 건물 역시 기구한 사연들이 있었다.
이 건물 역사의 시작은 13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시청과 시청앞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는데, 특히 공개 처형 시에는 피에 주린 파리의 모든 시민들이 이 곳에 모여 구경했다고 한다. 1533년, 프랑스와 1세에 의해, 기존 건물을 허물고, 당시 유럽에서 제일 큰 도시였던 파리에 걸맞게 새로운 시청 건물 공사가 시작된는데, 역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전형적인 르네상스식으로 설계되어, 300년후인 1835년의 증축과 1873년 파리코뮨시의 화재후 개축에도 넓고 높은 공간감과 빛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극도의 세련미를 추구하는 르네상스 건축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1871년 파리코뮨 시에 점거되어 코뮨 본부로 활용되었다가, 임박한 진압군의 공격을 앞에두고, 코뮨 세력들은 건물 전체에 불을 질러 전소시켜버려서 석조 외벽틀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뮨 후 1873년부터 19년 가까이 진행된 복원 공사에서는 살아남은 외벽틀들을 살아남은 그대로 활용해서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되살렸다.
아름다운 르네상스 식 열주들.
저 광장에 물들여진 희생자들의 피가 느껴진다. 공개처형 (화형?), 프랑스 혁명, 코뮨 ...
앙리4세 역시 이곳에서 암살되었다고 한다. 교통정체로 마차가 꼼짝달싹 못하는 순간을 자객이 노렸다고. 파리는 이미 17세기부터 교통정체가 일상화되었던 대도시였었네. 앙리4세는 피비린내나는 종교전쟁을 낭트칙령으로 끝낸 왕이다. 부르봉 왕조의 시작이기도 하고. 영화 '여왕 마고'에서는 다니엘 오뛰유가 앙리4세를 연기했었다.
불어를 전혀 모르지만, 저기 쓰인 글들이 자유, 평등, 박애 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을 은유하여 형상화한 여신상, 나란히 건너편에는 과학을 상징하는 여신 조각이 또 있다.
재건 공사에는 230여의 조각품들이 건물을 장식하게 되는데, 아래 사진은 그 중의 하나인 롤랑부인 (Madame Roland) 이다. 그녀는 신념과 열정의 지롱드파 여성 혁명가였다. 길로틴에 결국 희생되지만, 그 당시 유일한 여성 혁명가였다는 점과 감옥에서 남긴 수기, 그리고 처형 직전에 남긴 외침 "자유여, 너의 이름으로 행해진 죄악이여"로 유명하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름으로 행해진 그 끔찍한 살육들을 파리는 기억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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