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뻔하게 예상했던 반응이라 전혀 실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은 그 다음 수를 준비하지 않았으니 일단은 작전상 후퇴.
와이프도 긴장하는 눈치이다. '이 인간이 이렇게 쉽게 퇴각할 리가 없을 텐데.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그리고 간헐적인 잽을 수시로 던진다.
"살께, 사게 해줘" vs. "끝난 얘기야 절대 안돼"
짤막한 긴장된 공방을 며칠동안 주고 받는다.
어떻게 해볼까... 발렌타인 데이 장미꽃 한다발? 너무 식상하다.
편지? 그래 편지를 써보자. 와이프 안녕?으로 시작하는 편지. 어쩌면 먹힐지도 모른다.
그렇게 결심하고서 회사에 출근해서는 대놓고 딴짓한다.
"와이프 안녕" 커서는 계속 깜박이고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나름 와이프와의 공감 포인트가 떠오른다.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해 "유치하고 이기적인" 욕심들을 고백해 나아간다.
감기는 어때?
오랜만에 또 글로 얘기해본다.
한국 떠나 만 4년이 넘었다.
처음 와서는 낯선 환경에, 영어도 안되고, 직장도 불안하고, 늘 의견이 맞는 것도 아니어서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이제는 정말 자리를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애들이 공부만 좀 잘하면 더 할 나위없겠는데...건 뜻대로 안되는거고.
난 좀 외롭고 단조롭기는 하지만 여유있는 미국식 생활 패턴에 만족한다.
와이프가 남편을 잘 믿어주고, 잘 참아주고, 잘 콘트롤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거고, 너무 쉽게 늙어버렸다.
이렇게 세상을 관조하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구나 생각하니 좀 슬퍼진다.
도 닦아서 간달프 도사되려고 미국에 온 거 아닌데
우리, 인생을 좀 세속적으로 장식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 정신줄 놓치지 않아 내 인생에서 행복했었던 몇 장면을 기억할 수 있다면, 정확히 10년전 우리 미국 여행했을 때인 이 사진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약간 쌀쌀했지만 상쾌한 날씨였었고, 눈구름들을 배경으로한 광활한 풍경들은 감동적이기 까지 했고, 우리 아이들은 너무 귀여웠었고, 나하고 우리 와이프는 촌티나는 감수성으로 젊었었잖아.
이 눈부신 이미지에 대한 인상이 나하고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뭐 거창하게 생애에 남을 추억을 더 쌓을 거야라는 건 철없다는 거 다안다.
우리는 지금 열심히 생활이라는 것을 살고 있고, 삶이란 결국 생활의 연속이겠지.
철없는 거 싫다고 인생을 생활로만 채울 수는 없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비싼 차여야 하냐고?
차는 생활 수단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추억 쌓기 수단이잖아.
특히 미국에서 여행의 대부분은 차와 함께 할 수 밖에 없고, 차가 편해야 하고, 즐거워야 하고, 안전해야 하겠지.
물론 나는 즐거워야 한다는데에 너무 커다란 방점을 두고 있지만.
즐거움이 커지는 만큼, 집 밖을 나서는 것에 대한 동기 유발이 덩달아 더 커지겠지
더 자주 미술관과 오페라, 그리고 콘서트를 가고, 더 자주 그룹폰의 맛집들을 더 멀리 찾아가게 되고, 더 자주 던저니스 게를 사먹으로 가게 되고,
우리가 처음 아반떼를 샀을 때 처럼 말이다.
그 즐거움에 그렇게 큰 돈을 투자해야 하냐고 ...
내가 고른 옵션은 90,000 불 정도 한다. 응, 엄청 비싸지.. 그래서 고민을 좀 많이 했었지
그런데, 결국 결심을 이끈 정보를 좀 알아내었거든.
이제부터 숫자들이 좀 나오긴 하는데,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봐줄래?
테슬라 유저 그룹에서 많은 사람들이 Alliant Credit Union 또는 PenFed라는 곳에서 융자를 받았더라고, 거기 조건이 6년까지 신용도에 따라 1.49% ~ 1.99%야.
한 5만5천불은 현재 내가 융통할 수 있는 자산으로 Downpay하고
3만5천불을 융자 받는데, 한달에 약 508불 내면 돼.
민트에서 계산을 해봤는데, 작년에 한달 평균 290불 어치 기름을 넣었더라고, 물론 여행간 거 포함해서. 여기서 최소한 200불을 올해 여유분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
또 세금 정산 4600불 돌려 받았잖아. 이걸 12로 나누면, 작년에 한달에 383 불씩 세금을 더 안내도 되었었다는 얘기잖아.
여기서 최소한 300불 정도 여유는 찾을 수 있겠지.
올해 연봉이 한푼도 안오른다고 봐도, 작년 정도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저축에 기반해서 508불의 여유를 이렇게 찾을 수 있는거지.
앞으로 군소리없이 6년 동안 열심히 일할께. 내년도 올해처럼 팀장이 줄 수 있는 좋은 평가 받아낼께.
1.49%라도 이자 내는 거 아깝다고?
3만5천불을 그냥 6년으로 나누면 486불이야. 한달 이자가 22불이라고 볼 수 있지.
와이프,
요즘 테슬라 때문에, 회사에서 일도 잘 안되고, 밤에 잠도 잘 못자고 그래.
사람이 욕망을 품게 되면 날카로와지나봐. 이제 와이프 허락 받아내어서 정리해서 정상 생활로 돌아갔으면 해.
테슬라 사는 거 허락해줘 ^^
남편
와이프는 그날 저녁 허락을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