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16, 2017

Paris_2017 파리여행기 - 5 - 세느강

오후가 되니 시차적응이 안되어 많이 힘들다. 무리하지 말고 숙소로 돌아와서 낮잠을 자면서 쉬기로 한다. 숙소가 중심지에 있으니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여름철의 파리는 위도가 북위 49에 달해 거의 밤 10시가 다되어야 깜깜해지니, 하루를 정말 길게 보낸다. 대신 겨울에는 얼마나 밤이 길지를 반대로 생각해보니 겨울의 유럽 여행은 시간 손해가 너무 클 것 같다. 대신 다른 관광객들과의 경쟁에서 좀 더 여유가 있으려나. 2시간 정도 잠을 잤나, 오후 6시쯤 다시 나서 이제 세느강을 따라서 죽 거닐어 볼려고 한다.

세느상 산책의 출발점은 생 자크 탑(Tour Saint-Jacques)이다. 마치 노틀담 사원의 한쪽 귀퉁이를 떼어다가 탑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 16세기 초엽에 고딕양식으로 지워졌던 '정육점의 성 제임스' 성당(Saint-Jacques-de-la-Boucherie) 일부라고 한다. Butchers, 정육점으로 써놓기는 했지만, 사실 육가공을 취급하는 장인 및 상인 계급들이 교회가 지어질 당시에 상당한 물주로 이런 호화스런 교회의 스폰서 역할을 할 정도의 재력과 그것을 뒷받침할 세력을 쌓았다니, 조선으로치면 백정들인데 말이다.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이 탑만 남고 교회는 철거된다. 이 탑만이라도 남은 것이 다행이라 해야겠다.


세느 강이다. 반대편에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가 보인다. 일요일 늦은 오후에 파리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세느 강변을 즐기고 있다.

강을 건너서 마레지구 쪽을 바라보니 시청(Hotel de Ville)을 보다 넓게 담아 낼 수 있다.

자물쇠를 걸 수 있는 틈만 보이면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자물통이 주는 느낌은 언약보다는 속박과 굴레라는 뉘앙스가 훨씬 강한 듯한데, 왜 행복해야할 사랑에 그런 우울한 이미지를 덧씌우고 싶을까라는 딴지를 걸어본다.

이건 무서운 느낌이 나는 공해 수준이다.


퐁네프 다리. 역시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을 잠시 상기시켜줘야 하는데, 너무 오래전에 봐서 스토리가 하나도 기억안난다.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줄리엣비노슈가 춤추던 장면 정도가 어렴풋하다. 어쩌면 '나쁜 피'랑 겹쳐서 헷갈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한번 날 잡아 20년전에 본 영화들을 모아서 다시 한번씩들 봐야겠다. 그때의 나를, 그때 감수성의 선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어떤 울컥함이었었던 거였는지. 변해버린 내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런지.
건너편에 보이는 공사장은 1869년에 개장했던 사마르틴 백화점인데, 2005년 건물안전진단에 부적합을 받아 폐점되었다가, 오랜 법정 다툼 끝에 2010년부터 재개장 공사를 하고 있다. 이 공사도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지, 올해 재개장 목표였었는데, 아직도 공사 중이다.

일요일 오후이면 그 다음날인 월요일에 대한 출근에 대한 부담으로 주로 집에서들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파리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정열적으로 세느강변의 살사댄스를 즐기고들 있다. 투철한 욜로(YOLO)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퐁데자르(Pont des Arts) 나폴레옹 때 만든 파리의 첫 보행전용 철교라고 한다.

이제 루브르의 강변쪽 측면들을 보면서 걷는다. 루브르의 역사를 유념하면서, 어떻게 건물들이 튀를리 궁전까지 확장해갔는지와 그 확장된 건물들의 당해 시대의 건축 양식을 매칭해가면서 살펴보면 흥미로울 듯 하나, 막상 걸어가보니 기억이 섞여서 헷갈리고 만다.


루브르의 입구인 듯하다.

어느 시대에 증축되었는지 한가지 힌트가 있다. 장식 조각상 위에 장식 머리글자들이 있는데, 이 사진에는 H가 보인다. 그렇다면 앙리4세가 아니었을까? N자 벽장식도 보았는데, 분명 나폴레옹 3세였을 것이다.

Pont du Carrousel(캬후젤 다리)의 조각상인데 누가 유머스런 이미지를 붙여놓았다.

오르셰 박물관이 보인다. 이 시점부터 배도 고프고 다리가 극도로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끝까지 가보자는 와이프한테 오르세 정면까지만 가서 퇴각하기로 사정을 한다.

불어를 전혀 모르지만 루브르의 사자문이라고 해석이된다.

생제르망 록세우아(Saint-Germain l'Auxerrois) 성당이다. 이 성당의 종소리가 신호탄이 되면서 바르톨로뮤 축일의 대학살은 시작되었다.

루브르의 끝부분에 거의 다 온듯

오르셰 정면이다. 보통 여기 오면 빨리 줄서서 입장할 마음이 너무 바빠 이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가 없다.나름 이렇게 세느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평소에 못보던 루브르의 강변쪽 건물들과 오르셰의 위용을 천천히 즐길 수 있었다. 와이프의 코스 선택에 고마워해야 하는 순간이다.

솔페리노 다리(pont de Solférino) 였는데,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서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Passerelle Léopold-Sédar-Senghor) 다리라고 한다. 독특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설계자 Marc Mimram은 1999년에 이 다리로 건축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트륄리 정원. 어김없이 쌍쌍이 앉아 그들만의 시간을 즐긴다. 아마 파리 곳곳에 있는 많은 정원들은 이들에게 최고의 데이트 장소인 듯싶다.

콩코드 광장과 개선문이 멀리보이는 트륄리 정원 어느 산책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퇴각한다. 이제 정말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버티기 힘들다. 정원 북쪽에 작은 놀이 동산이 펼쳐져있다. 놀이동산을 즐기는 아이들 먹으라고 파는 아이스크림을 덥석 집어들고 고픈 배를 달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났더니 제법 힘이 난다. 이제 씩씩하게 걸어가자.


트륄리 정원을 벗어나니 리볼리 거리(rue de Rivoli)다. 나폴레옹의 프로젝트로서 자신이 승리한 전쟁터의 이름을 기념하여 거리 이름을 명명하였다.

고가의 명품 상점들로 유명한 거리라고 한다.

리볼리 거리를 쭉 따라서 걸어서 저녁을 먹으러 파리의 먹자 골목이라는 Rue Montorgueil 까지 왔다. 파리의 유명한 문호들 에밀졸라, 빅토르위고가 배를 채웠던 곳이라나.

파리에서 제일 오래된 빵가게(간판에 써있듯이 1730) Stohrer

그런데 웬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다들 관광객 뿐인 듯

관광객들을 상대로하는 레스토랑이란 것을 뻔히 알면서 속아주는 기분으로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관광객 기분 내기로 했다. 그래도 좌석 배치는 파리식으로 길거리를 내다보면서 좁게 꼭 붙어서 나란히 앉는다. 테이블들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좁을 뿐만 아니라, 옆에서 담배라도 피면 상당히 괴롭다. 그런데 정말 담배들 많이 핀다.

홍합요리랑 양파수프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 숙소에가서는 와인 한병


Tuesday, August 15, 2017

Paris_2017 파리여행기 - 4 - 마레지구

시청사를 뒤로하고 마레 (Le Marais) 지구로 들어선다. 마레지구의 역사도 로마시대까지 오래도록 거슬러 올라간다. 800 ~ 900년 초기 교회들이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12세기 필립2세에 의해 파리 보호용 외벽이 완성되면서, 보호를 원하는 시민들이 모여들며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13세기부터는  왕족 및 귀족들이 자신들의 거처를 세우기 시작하면서, 파리 대표적인 귀족 동네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혁명의 광풍에 이 지역의 귀족들은 스러져 가버렸지만, 귀족 거주지임으로 인해 발달하게된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은 지속되어, 상업 활동의 중심에 있었던 유태인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이곳의 유태인 공동체는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전반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나찌의 파리 점령기에 이 동네는 엄청난 수난을 겪었으리라. 나찌에 의해 파괴된 유태인 공동체는 1990년대부터 다시 복원되기 시작하여, 지금도 이 거리를 거닐면, 정통 유대교 복장을 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 음식인 팔라팔(Falafel) 가게들 앞에 장사진을 친 관광객들과, 한손에 팔라팔을 쥐고, 어딘가 앉아서 먹을 곳을 찾아 헤메고 돌아다니는, 역시 관광객들과 좁은 골목에서 부대끼게 된다.

아래의 교회는 생 제르베 교회(Église Saint-Gervais)라는 곳이다. 이곳은 두 명의 성자 (생 제르베와 생 포르테, 밀란의 순교자)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7세기부터 이 자리에 교회가 있었다고 하며, 현재의 건물은 1494년부터 건립되기 시작하여 오랜 세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1610년대가 되어서야 사진의 건물 정면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건물 내부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인데,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정면 모습은 고딕양식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식 바로크 양식이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교회 내부

이 교회는 오르간으로 유명하다. 프랑수와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68-1733)이 직접 연주했다고 한다.

파리 4구청

마레지구의 거리

이 아름다운 정원과 중세의 성곽형태의 대저택은 Hôtel de Sens로, 대학 시절 소피마르소 이상의 환상을 자아내었던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영화 '여왕마고'의 마고(Margot)가 앙리4세로부터 이혼 당한 후에 살던 곳이다. 성 바르톨로뮤 축일의 대학살 사건을 영화 속에서는 꽤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충격적인 장면들은 영화 포스터의 피빛과 함께 오래토록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파리시민들의 잔인성과 폭력성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뮨으로 이어지는 이런 저런 혁명들과 최근에는 알제리인들에 대한 학살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반복되어 왔다.

규모는 작으나, 제법 정성스러운 꽃장식으로 꾸며져 있는 별모양의 정원



정면에서 본 모습. 후기 고딕과 초기 르네상스의 양식이라고 한다.



초기 파리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필립2세에 의해 12세기에 세워진 성벽의 잔해가 남아있는데, 재미있게도 주거용 아파트의 외벽으로 활용되고 있다. 파리가 이 성벽 너머로 팽창해버리면서 더이상의 성벽으로서의 효용가치가 일치감치 없어져 버린거다. 루브르 박물관의 지하에도 이 성벽의 기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래는 Saint Paul Village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이곳은 조약돌로 포장된 마당을 공유하는 상가 마을인데, 골동품점과 갤러리, 그리고 공예품 점들이 이런 저런 예쁜 전시들을 꾸며놓아 마치 그림과 같은 연출을 하고 있다. 미국 아리조나 세도나의 Tlaquepaque Arts & Crafts Village를 연상시킨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마레지구가 귀족지구 였음을 증명하는 귀족의 전형적인 대저택인 Hôtel de Sully이다. 여기에서 말년을 보낸 Sully 공작은 앙리4세의 재무상이었는데, 재무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을 뿐 아니라 권력의 전횡 역시 극심했다고 한다. 앙리4세의 암살과 함께 권력의 끈은 떨어지고 재무상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Hôtel de Sully를 장식하고 있는 슬픈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핑크스

이제 마레지구의 highlight인 보주광장(Place des Vosges)에 도착했다. 앙리4세가 또 등장한다. 앙리4세에 의해 조성된 이 공원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도시계획이란 이름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중앙에 정원이 널찍히 자리하고, 정원을 둘러싸고 귀족과 왕실을 위한 주거 건물들을 배치하였고, 건물 아래에는 회랑이 연결되어 둘러싸고 있다. 이런 계획된 형태의 귀족 주거지는 유럽의 전형이 되어서 전파되어 갔다.

공원을 둘러싼 주거 건물들

1층 회랑은 갤러리 거리로 활용되고 있다.

귀족 거주지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



점심은 역시 또 yelp의 도움을 받아 평점 좋은 식당을 하나 골라서 첫 프랑스식 식사를 해보기로 한다. 선택된 장소는  Le Temps des Cerises.

커피를 달라고 했더니, 에스프레소를 준다. long coffee를 달라고 해야 americano 스타일로 마실 수 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된다. 그저 찔끔찔끔 머금어 마실 수 밖에 없네

에스카고르 . 달팽이 요리, 솔직히 별 맛이 없다. 양념 맛으로 먹었다. 한국의 골뱅이와 광안리 해변에 봉지 가득 담아 팔던 고동이 한 열배쯤은 더 맛있다.

프랑스식 육회인 boeuf tartare. 육회를 좋아하는 편이고, 나름 소고기 풍미를 즐길만 하지만, '우와' 하는 감탄사까지 나올 정도는 아니다. 프렌치 프라이 아니랄까봐 꼭 감자 튀김을 곁들여 준다. 그런데 색깔이 이렇게 고운 노란색으로 튀겨진 건 처음본다.

우리 딸이 먹은 Vegetarian 메뉴인데 어떤 것인지 잊어버렸다. 어쨋든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쓴 요리. 우리 딸은 대학 여름학기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와있다.

Carnavalet Museum. 파리의 민속 박물관 같은 곳. 과거 여러 시대의 생활상들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꼭 관람하리라 마음먹었었는데, 내부수리중으로 언제 재개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세비뉴 거리에서 바라본 생폴생루이스 교회

거리의 아티스트. 파리 건물벽 이곳 저곳에서 저 여전사 프린트를 자주 만났다.

하염없이 긴줄을 늘어선 채 팔라팔을 기다리고 있다. 보아하니 이 집 줄이 제일 긴것으로보아 제일 유명한 집인가보다.

마레지구에는 유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있으니 유대교의 시나고그 역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으리으리한 성당에 비해 확실히 규모도 작고 소박하다.

Paris 2017 파리여행기 - 3 - 시청건물 (Hôtel de Ville)

여행의 세부적인 일정은 와이프가 담당하기로 했다.  늘 욕심이 앞서서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이동 경로 들로 인해, 계획의 반도 달성하지 못하고 퇴각하는 날이 빈번하긴 하지만, 나름 촉이 있어서 의미가 있고 생각할 거리가 있는 곳을 잘 골라내는 편이다. 그리고 충분한 사전학습을 통한 선택이기 때문에 늘 현장에서의 적절한 설명이 뒤따르니 좀 게으른 상태로 나서도 믿을 구석이 있다.
파리는 이곳 저곳에 이런 저런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널려있다. 파리의 그 오랜 과거로의 얽히고 설킨 길들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하는 Museum Pass를 2일권, 4일권, 6일권 단위로 판다.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을 제외하고서 온종일 여행할 수 있는 날이 7일이니, 첫날인 오늘은 Museum Pass없이 다니기로 하고,  역사를 종축으로 돌려 파리를 뜯어보는 건 내일부터 시작해서 떠나기 전날까지 6일간 6일권을 활용하기로 한다. 1주일 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전철 pass 는월요일부터 유효기간이 시작된다. 내일이 월요일이니, 내일 아침 구매하여 신나게 타고 다니기로 하고 일요일인 오늘은 숙소 주변을 걸어 다니기로 한다.
이렇게 까지는 부부가 흔쾌히 박자를 잘 맞췄는데, 아침 먹는 문제로 삐걱거린다. 파리에서의 첫 아침을 맛있는 커피와 함께 프랑스식 브런치로 먹어주는 것으로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내딛는 건데, 공교롭게도 일요일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일요일 아침에 식당 문을 연 곳은 관광지에서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식당들이므로, 적당히 괜찮은 빵집에가서 빵을 사서 길거리 적당한 벤치에서 먹자는 것이 와이프의 판단이자 번복할 수 없는 결정 사항이다.. 적당히 괜찮은 빵집을 yelp를 통해 어떻게든 찾았다. 'Legay Choc' 평점은 상당히 높은데 안타깝게도 커피를 안판다. 와이프의 명령 2호는 Starbucks를 찾으라는 거다. 스타벅스라면 사들고 온 빵들을 눈치안보고 펼쳐놓고 커피랑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말은 된다만, 파리에서의 첫 아침을 스타벅스에서 먹으니 영 여행하는 흥이 안돋는다.

Legay Choc 라는 빵집에서 사서 스타벅스에 펼쳐놓은 닭고기와 돼지고기 Quiche

이제 배를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Hôtel de Ville 이 바야흐로 이번 여행 첫 목적지가 될 것이다.  Hôtel이라 써있지만, 호텔이 아니고,  시청사를 의미한다. 파리 곳곳에 오랜 세월의 깊이가 아득하게 파여있듯이, 이 화려하고 웅장한 르네상스 건물 역시 기구한 사연들이 있었다.
이 건물 역사의 시작은 13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시청과 시청앞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는데, 특히 공개 처형 시에는 피에 주린 파리의 모든 시민들이 이 곳에 모여 구경했다고 한다. 1533년, 프랑스와 1세에 의해, 기존 건물을 허물고, 당시 유럽에서 제일 큰 도시였던 파리에 걸맞게 새로운 시청 건물 공사가 시작된는데, 역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전형적인 르네상스식으로 설계되어, 300년후인 1835년의 증축과 1873년 파리코뮨시의 화재후 개축에도 넓고 높은 공간감과 빛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극도의 세련미를 추구하는 르네상스 건축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1871년 파리코뮨 시에 점거되어 코뮨 본부로 활용되었다가, 임박한 진압군의 공격을 앞에두고, 코뮨 세력들은 건물 전체에 불을 질러 전소시켜버려서 석조 외벽틀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뮨 후 1873년부터 19년 가까이 진행된 복원 공사에서는 살아남은 외벽틀들을 살아남은 그대로 활용해서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되살렸다.

아름다운 르네상스 식 열주들.



저 광장에 물들여진 희생자들의 피가 느껴진다. 공개처형 (화형?), 프랑스 혁명, 코뮨 ...
앙리4세 역시 이곳에서 암살되었다고 한다. 교통정체로 마차가 꼼짝달싹 못하는 순간을 자객이 노렸다고. 파리는 이미 17세기부터 교통정체가 일상화되었던 대도시였었네. 앙리4세는 피비린내나는 종교전쟁을 낭트칙령으로 끝낸 왕이다. 부르봉 왕조의 시작이기도 하고. 영화 '여왕 마고'에서는 다니엘 오뛰유가 앙리4세를 연기했었다.



불어를 전혀 모르지만, 저기 쓰인 글들이 자유, 평등, 박애 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을 은유하여 형상화한 여신상, 나란히 건너편에는 과학을 상징하는 여신 조각이 또 있다.



재건 공사에는 230여의 조각품들이 건물을 장식하게 되는데,  아래 사진은 그 중의 하나인 롤랑부인 (Madame Roland) 이다. 그녀는 신념과 열정의 지롱드파 여성 혁명가였다. 길로틴에 결국 희생되지만, 그 당시 유일한 여성 혁명가였다는 점과 감옥에서 남긴 수기, 그리고 처형 직전에 남긴 외침 "자유여, 너의 이름으로 행해진 죄악이여"로 유명하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름으로 행해진 그 끔찍한 살육들을 파리는 기억하고 있는지.


Sunday, August 13, 2017

Paris 2017 파리여행기 - 2 - 숙소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한 것 외에는 파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들 녀석을 이번 여행에 데려오지 못했다. 어릴때 여기저기 너무 많이 데리고 다녔는지 이제 여행이라면 시큰둥을 너머 아예 불편하고 귀찮다고 싫어라고 한다. 세상에 파리 여행을 마다 하다니, 와이프의 주장대로 '결핍' 없이 키운 결과인가, 하지만 없는 '결핍'을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었나 싶다. 그래도 그럭저럭 다 커서 집에 혼자둬도 큰 걱정은 없는 나이가 되긴했네.
우리 부부가 1주일동안 단촐히 지낼 숙소로 원룸 Airbnb가 적당할 듯하다.  8월의 파리는 극도로 습하고 더울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관 때문에 에어컨을 필수 검색 조건으로 넣어두었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후보 포스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에어컨 없는 집이 이렇게 많나? 습기와 더위를 어떻게 버티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에어컨을 처음 도착했을 때 딱 한번 켜고 일주일 여행 기간 내도록 가동할 필요가 없었다. 파리의 8월 날씨는 마치 한국의 이른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면서도 쾌적하다. 그러면 도대체 파리의 8월의 폭염 이미지는 왜 어떻게 내 머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을까? 2003년의 유럽 폭염 사태를 전하는 미디어의 흥분과 아우성들이 나의 잠재의식에 기준점으로 작동하는 기억을 심어 놓았던 거다. 그해 8월 15,000 여명의 프랑스인들이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던, 대규모 지진 피해에 맞먹는 엄청난 비극이었다. 이 비극의 준거점 하나가 모든 사실 관계에 근거한 baseline을 무시해버리고 지극히 잘못된 현실인식을 뿌리내려 놓았던 것이다.
내 머리 속에 이런 잘못된 똬리들, 드라마틱한 어떤 특이점 하나로 왜곡되어버린 착각들, 편견들, 선입관들이 얼마나 많을까?
바보같은 에어콘 말고 유념했던 것은 교통 접근성이다. 파리 여행은 다리를 혹사시키는 여행이다. 이동 거리의 최적 극대화가 필수적이다. 가장 많은 노선을 가진 도심부 전철 환승역 샤틀레(Châtelet) 가 있는 레 알(Les Halles)지구가 정답이었다.  그 다음은 세탁기 여부와 피곤한 하루 여행을 마치고 다리뻗고 퍼질러 앉아 샹송을 들으며 와인 한잔할 수 있는 독립된 소파 공간 등을 따졌다. 여행 떠나기 3개월 전 하루 140불 8일밤을 묶을 airbnb 숙소를 골라 예약을 해두었다.
이렇게 교통 접근성을 따져서 구한 보람이 샤를드골 공항에 착륙해서 airbnb 숙소로 가는 길에 여지없이 빛을 발한다. 공항 철도 역할을 하는 RER B로 한번의 환승도 없이 바로 샤틀레 레알 역으로 40분만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3분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다.
RER에는 많은 흑인들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들은 불어가 아니었다. 뭔가 처음듣는 언어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쓰이는 언어임에는 틀림이없다. 하지만, 파리북역 (Gare du Nord)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더니 인종 구성이 백인 중심으로 순간 전환되어 버린다. 아프리카 국가가 아닌 국가들 중에서 프랑스는 미국 다음 두번째로 흑인 인구 비중이 높은 국가이다. 그러니, 여전히 주변에 많은 흑인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 흑인들은 북역에서 총총히 흩어져버린 그들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미국과는 분명히 차원이 다를 것 같은 프랑스식 인종과 문화 충돌 현장의 한 단면을 살짝 엿본 느낌이다. 식민지 시대에 건너와 2대 3대가 뿌리를 내린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난민들에 이르기까지의 그 많은 아랍 사람들, 그리고 흑인으로서 주류였던 뒤마 시기의 흑인들부터, 위험천만한 리비아-지중해 루트를.통해 건너오는 오늘날의 흑인들이 뒤섞여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최근의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와 맞물려 흥미진진한 정치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숙소로 가는 짧은 골목길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해버린다. 파리의 많은 골목길들은 조약돌 포장(cobblestone road)이다. 김무성식  노룩패스가 가능한 짐가방을 인터넷 최저가로 검색 구매해서는 드디어 활용할 기회가 왔는데, 싼게 비지떡이었는지 조약돌 포장길의 충격을 못버티고 바로 바퀴 한쪽을 지탱하는 바닥이 깨져버렸다. 파리여행에 문제없는 가방인지 확인하고 샀어야했다.
숙소 안 모든 것이 작다.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을 연상시킨다. 엘리베이터가 겨우 계단과 계단사이에 낑겨서 설치되어 있는데 단 2사람만 탈 수 있다. 이렇게 작은 엘리베이터는 처음본다. 숙소의 샤워부스, 팬케이크 형 드럼 세탁기, 미니 냉장고, 미니 오븐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여기 저기 부딪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위축된 행동들을 하면서부터 여행이란 불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래도, 너무나 고맙게도 집주인이 샴페인과 맥주 그리고 콜라 등을 준비해뒀다. 환영 샴페인의 맛은 기대 이상으로 제법 훌륭한 수준이다.

airbnb 숙소가 있는 아파트 건물




퍼질러 앉아 와인과 샹송을 즐길 수 있는 airbnb 거실


airbnb 거실 창문에서 바라다 본 앞 건물, 와이프는 저 아파트에서 라보엠의 미미가 곧 걸어내려올 것 같다고 한다.


기대이상으로 훌륭했던 환영 샴페인


Paris 2017 - 1 - 아이슬란드 환승

나이가 50이 다되어가니 이제 오래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오래되면 대부분 탈색하고, 부스러지고, 이어져있던 것들이 끊어지고, 썩고 난 후에도 생명을 잃어간다.  정말 몇 안되는 어떤 것들은 생명 활동을 초월하여 긴 세월을 버티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신기하고 감동적인 경외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텨온 것들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왔나보다. 지박령이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긴 세월을 버텨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레가 한 40km, 걸어서는 조금 무리지만 자전거라면 충분히 돌 수 있는 거리의 환형 도로에 둘러쌓여 있는 파리라는 도시에는 어떤 지박령이 깃들어 있길래 2천여년의 세월 속에 사라지지 않고 길다란 과거의 끈들을 곳곳에 걸쳐놓고 아직도 살아있을까?란 생각을 비행기에서 이굴리고 저리 굴려 대었다.
내가 어번에 파리 여행에 타고가는 비행기는  아이슬란드란 나라의 저가 항공인  WOW 항공이다.  개인 스크린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형태의 앤터테인먼트도 없다. 기내식도 없고, 물 마저도 사먹어야 한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좁은 자리에 갇혀서 멍하니 이런 공상 저런 공상을 하거나, 조야하게 편집된 항공사 잡지를 읽는 것 뿐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를 성수기에 1000불 안쪽의 비용으로 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1년에 한번 탈까말까하는 장거리 비행인데, 마치 습관처럼 저가 항공요금에 집요한 집착을 한다. 이 궁상스런 습관은 아마도 처음 비행기라는 것을 탔을때 받았던 요금에 대한 충격의 수십년 지속되는 트라우마의 흔적이리라.
그래도, 아이슬란드라는 미지의 땅을 잠깐이라도 흘깃거릴 수 있다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레이캬비크란 도시를 경유한다.
와이프랑 연애할 때, 와이프가 어떤 지리 과목 프로젝트 일환으로 아이슬란드 대사관을 방문하여 팜플렛 얻으러 가는 길을 동행했었다. 그때 인구가 수십만 밖에 안되는 정말 조그만 나라,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인 경도상으로나 지구 정반대편에 떨어진 멀고도 먼 나라, 그래서 해외라고는 제주도의 경험 밖에 없었던 그때는 아마 생전에 가게될 날은 없을 거라고 짐작케 했던 나라였다. 20여년이 흘러 비록 경유이지만 방문을 하기는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이슬란드 땅은 무척이나 척박했다. 머나먼 나라란 이미지 대신 어떤 비극의 느낌이 아이슬란드란 나라 이름에 결부되기 시작한 건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collapse)'란 책의 아이슬란드에 대한 설명 때문이다.
노르웨이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떠나기 시작한 바이킹들의 숱한 죽음과 약탈의 항해 끝에 서기 800여년경 도달한 무인도였던 이 땅은 처음에는 숲도 있었고, 무척 비옥했으며, 목축에 적합한 풀밭들이 풍부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기후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고 한다. 초기 정착민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축복받은 땅이었으리라.
하지만 이 비옥했던 토양은 오랜 빙하기간과 화산재를 통해 축적되어온 귀중한 광물인 셈이었고, 불과 몇십년의 짧은 기간 동안 신기루 처럼 사라지고 만다. 숲도, 목축지도, 농경지도.
20세기에 이르러 자체적인 철제어선을 통한 대량 어업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 지난하고도 가혹한 멜서스 트랩과의 싸움을 수백년동안 겪어왔어야 했다. 화산재가 목축지를 덮쳤던 1700년대의 어떤 해에는 인구의 5분의1이 아사하였다. 그래서, 아이슬랜드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인간에의한 환경파괴에 기인한 황량한 황무지 땅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아주 조심스럽게 토양을 되찾고, 숲을 다시 만들고자하는 노력들을 장기적인 계획하에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는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으로 WOW 로고와 여름인데도  푸른빛도는 풀한포기 없는 황무지, 그리고 저 멀리 수도 레이캬비크를 같이 담았다.




비행기에서 파는 모든 것들이 황당하게 비쌌다. 설마 커피까지도 사먹어야 할까라는 의구심으로 기내판매물품을 뒤적여보니, 아니나 다를까, 커피 한잔에 3유로, 3.6불, 우리나라 돈으로 4천원이 넘는다. 그래도 커피는 무조건 마셔야지. 카드 결제를 하고 아이슬란드 커피는 어떤 맛일까 설레는 기대로 승무원의 동작을 좇아가는데, 조그만 봉지커피를 북 뜯어 종이컵에 쏟아넣더니 뜨거운 물을 찔끔 붓고는 저어 마시라고 막대를 하나 꽂아준다. 4천원내고 백원짜리 봉지 커피를 먹은 셈이다.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애처로운 눈길로 금발의 백설공주 같은 승무원을 쳐다보지만, 마치 소중한 어떤 것을 나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마치고서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음 좌석열로 전진한다.
그래 공항에 내리면 맛있는 커피가 있을꺼다. 환승을 기다리며 제대로된 커피를 즐기고 말테다. 레이캬비크 공항에 착륙하니 바로 여기서 EU 진입 수속을 해야 한다. 아담한 공항에 입국 심사 줄은 짧고 심사원은 친절했다. 환승 탑승구 를 확인하자 말자, 바로 커피 사먹으러 직행했는데. 한잔에 5유로를 지불하니까, 빈 종이컵을 하나 주더니, 저기 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알아서 뽑아 먹으란다.  본전 뽑아야지 하는 생각에 뒤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무시하며, 뜨거운 물 뽑고, 에스프레소 두번 쭉쭉 뽑아 머금어보니, 비행기 안에서 먹었던 봉지커피보다는 낫다만, 가성비가 역시 용납이 안된다.
그래도 커피 마시고 정신 차려, 소위 '면세' 편의점을 둘러보니, 맥주 한캔에 10불, 빵과 얇은 치즈와 얇은 햄으로 구성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샌드위치의 면세 가격이 8불, 뭔가 내용물을 조금이라도 갖췄다 싶으면 바로 10불이 훌쩍 넘어간다. 아이슬란드의 악명 높은 물가를 목격하고 말았다.

5유로짜리 자판기 커피를 즐기고 있음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제 어떤 기괴한 지박령이 촉수를 날름거릴지 모르는 오래되고도 오래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도시, The city of light, 파리로 간다.